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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20 석사를 마치다.
    발자국/2019-2020 영국 석사 2021. 1. 6. 17:59

    석사 준비에 관련한 글을 한참 쓰다가 석사 과정이 막상 시작된 이후부터는 이래저래 적응하랴, 폭풍처럼 밀려오는 리딩 리스트를 소화하느라, 그리고 여러 가지 개인적인 상황들이 겹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블로그를 거의 버려둔 상태였다가 오랜만에 생각이 나서 접속을 해봤는데, 방문자 통계를 보고 깜짝 놀랐다. 재작년에 썼던 글인데도 여전히 찾아주시는 분들이 많았다. 코로나 상황에서도 해외 석사 과정을 이렇게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고, 또 정보가 그만큼 많지 않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지난 12월 16일에 Merit을 받고 졸업했다. 1, 2학기 성적에서 Distinction을 좀 받아둬서 디스팅션 졸업을 목표로 했지만, 아쉽게 논문 성적이 내가 생각한 것만큼 나와주지 않았다. 논문에서 점수를 1-2점 정도 더 받았다면 Distinction도 가능했을텐데, 막바지에 힘이 조금 빠져 그냥 제출해버렸던 것이 아쉬움이 남는다.

     

     

     

    코로나로 인해 졸업장이 더 일찍 나왔다. 물론 국제 택배로 배송되느라 시간이 좀 걸렸지만.

     

     

    올 2월, 영국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급속하게 퍼지기 시작했던 데다가 초반 부족했던 NHS의 대응에 너무나 두려웠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초반에는 코로나 검사 자체를 많이 하지 않았다. 전화를 해도 받지도 않고, 증상이 있다고 호소해도 파라세타몰을 먹고 일단 일주일을 기다려보라는 말을 해준다고 들었다. 인종 차별도 (안 그래도 꽤 많았는데) 더 많이 겪었으며, stockpiling으로 휴지와 식재료를 하나도 구하지 못해 한동안 멘붕이었다. 전쟁이 난다면 이런 상황인 걸까? 생각했다. 영국에 남아야 할까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까 정말 많이 고민했었다. 

     

     

    기숙사도 중간에 퇴실하더라도 남은 기간은 환불이 안 되며 렌트를 계속 내야 한다는 답변을 받아서, 기왕 이렇게 된 거 영국에 남아서 논문을 끝까지 마무리하겠다고 결심했었다. 귀국하는 편보다 영국에서 혼자 있는 것이 논문에도 더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3월 말쯤 생존 택배를 (ㅋㅋㅋ) 한국에서 받았으나, 가족들이 매일 걱정하고 돌아오는 게 좋겠다고 하신 데다가, 기숙사에서도 Summer term 기숙사비를 내지 않고 돌아갈 수 있게 해주겠다고 메일이 와서 급 귀국을 결정하고, 비행기표를 산 지 열흘 만에 모든 짐을 정리하고 귀국했다. 플랏메이트 때문에 상당히 스트레스가 심했기 때문에, 미련 없이 돌아왔다.

     

     

    당시 해외 유입으로 인한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이 심하고 이와 관련한 국내 여론이 좋지 않았던 상황이라, 나는 가족, 그리고 가까운 친구 한 명을 제외하고 한국에 있는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입국했다 (지금은 다 안다).

     

     

    사실 2주 간의 자가격리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전에도 같은 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영국에서는 기숙사 방문 밖을 나가지 않았다면, 적어도 한국에서는 방과 거실, 부엌을 쓸 수 있었으니까 더 상황이 나아졌다고도 볼 수 있겠다. 부모님과 동생이 자가격리자 가족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호텔에서 2주 간 지냈고, 이 점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가족들에게 미안하게 생각한다.

     

     

    자가격리 중 힘들었던 일은 딱 두 가지다. 첫째, 코로나 검사를 받으러 간 것. 사실 검사 자체는 거의 아프지 않았으나 (비염이 있었던 사람으로서, 이비인후과에서 콧물을 빼는 기계가 들어가는 만큼 면봉이 들어간 것 같았다), 보건소까지 편도 1시간 30분을 걸어서 가야 했던 점이 힘들었다. 대중교통을 탈 수 없기 때문에 걸어가야만 했는데 (당연하지만 따릉이도 안 됐음), 귀국한 다음날 바로 가야 했을 뿐만 아니라 영국에서 그 전까지 lockdown으로 그렇게 오랫동안 걸을 일이 없었기 때문에 참 힘들었다. 코로나 검사가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1분도 안 돼서 끝났다. 나는 검사를 받는 30초 내외 동안만 앉아있을 수 있었고, 검사를 받고 바로 다시 1시간 30분을 걸어서 집에 왔다. 다음날 너무 힘이 들었다.

     

     

    둘째, 입국 다다음 날 내가 확진자와 밀첩 접촉자라는 연락을 받았을 때. 귀국 비행기에서 내가 앉은 자리의 3줄 반경에 확진자가 있었던 것이다. 누가 확진자인지도 모르는 상황에 너무 화가 나면서도 한편으로는 연민의 감정도 들고, 이래저래 감정적으로 힘들었다. 귀국 당시가 부활절 방학이었기 때문에 에세이를 써서 제출해야 하는 상황인데, 도저히 집중할 수가 없었다.

     

     

    이래저래 에세이를 다 제출하자마자 논문이 시작이 되었는데, 논문을 난생 처음 써보는 데다가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너무 두렵고 주저했다. 다행히 지도교수님을 잘 만나서, 스카이프로 모든 미팅을 진행했음에도 가이드를 참 잘 해주셨다. 논문을 제출하기 전 마지막 미팅에서, 본인을 추천인으로 써도 된다는 말씀까지 먼저 해주셔서, 안 그래도 추천인 부탁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던 참이었는데 정말 정말 감사했다.

     

     

     

    다 지나서 드는 생각이지만, 석사 과정 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 일들은 모두 나를 내면적으로, 학문적으로 성장시켰다. 앞으로 무슨 일이 나에게 펼쳐질지 모르지만, 석사 과정에서 다져진 내면과 지식이 분명 빛을 발할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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